성서대학

67. 형제 사랑의 의미

2016.11.06 15:22

관리자 조회 수:142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이 오른편에 세우시고 창조 때부터 준비하신 나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신 의인들 곧 마지막 심판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굶주린 자, 목마른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자, 갇힌 자 들에게 다만 인간적으로 행동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 실제로 누구를 만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객관적으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참한 현실을 보았으며, 아무런 의도 없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비참한 사람들과 연대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그들 편에 서지 않고서는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과 임무를 수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세상의 이웃들에게 다가갔으며, 그 이웃들의 철저한 ‘세상적인’ 고난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영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이처럼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섯 처녀처럼 등불을 밝히는 자들이 되었으며, 신실한 종처럼 충직한 관리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원리와 이념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으며, ‘형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그들의 형제가 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형제로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실로 자신들의 아버지로 알았기 때문에 비참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과 잘 곳과 입을 옷을 주었으며, 그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하십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런 일을 하지 않은 교회는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지 않는 교회는 가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는 심판과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랑은 명령으로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순종의 행위입니다. 언뜻 보면 이것은 마치 모순처럼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참된 순종은 오직 사랑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발적인 것,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행복한 의무가 되게 하려면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서 값없는 은총의 주권아래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이 은총 아래 머물게 되며,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때 그분의 멍에 곧 신앙의 순종은 편하다는 사실과 그분의 짐 곧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가볍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멍에와 그분의 짐은 ‘편하고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낯선 요구이지만, 이제 그 요구는 우리의 ‘본래’ 모습대로 ‘되라’는 요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계명이 됨으로써 비로소 그 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