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70. 세례요한의 임무

2016.12.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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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6~17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세례요한이 사람들을 돌아오게 한다는 말입니까? 그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인가요?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 사람들을 불러서 듣게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친히 하실’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친히 이 일을 하실 때, 그분이 보내신 사람이 없이 일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 그분의 예언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세례요한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거스르며 자신을 주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실로 세례요한은 사람들을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물론 그는 많은 사람을 돌아오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 자신의 일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약속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가족 안에서 요한의 출생과 함께 일어난 사건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구원의 뿔을 높이셨습니다.’ 요한의 출생을 기뻐한다는 것은 바로 구주가 오신다는 사실을 기뻐한다는 뜻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되었던 분이시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일어난 일은 새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항상 존재하였으며, 지금 결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다가올 시간의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며, 예언자들도 그분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존재하는 곳에 하나님도 존재하십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나를, 한번도 기도하지 않은 나를, 조금도 기도하지 않는 나를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신실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을 일평생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길을 잃어버린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고 일평생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율법이 제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미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분을 섬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두려워햐야 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 자신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물의 주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함과 의로움 속에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함과 의로움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다시금 듣고 받아들일 태세를 지녀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