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54. 헤브론과 불안한 공존

2016.09.1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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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3:19-20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헤브론은 유다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 해발 950m 고지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헤브론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이 정착하여 믿음의 조상들의 실질적인 고향이 되었고, 이후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숨을 거둔 후 이 곳 막벨라 굴에 묻히면서 아브라함,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는 유대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헤브론은 이후의 역사에서도 모든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다윗이 도읍을 정하고 7년 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구약시대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 버금가는 중요한 성지가 된 헤브론은 중간시대에도 이 도시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헤롯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전 20년 막벨라 굴 위에 유대교 사원을 세워 그 중요성이 계속 이어졌다. 이 사원은 아랍인들이 헤브론을 점령한 주후 638년 이후에는 회교사원이 되었고 다시 십자군의 점령(기독교)과 아랍세력의 회복 등을 통해 주인이 뒤바뀌면서 유대교, 기독교, 회교도 모두가 가보기를 갈망하는 성지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헤브론은 요단강 서안지역(West Bank)에 속해 있는 곳으로 1967년 6일전쟁 이전에는 요르단의 영토였으나 현재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의 점령지대로 되어있다. 이스라엘은 막벨라 굴에서 1km 떨어진 시 한 귀퉁이에 키리아트 아르바라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허용하여 현재는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불안한 공존을 하며 살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 각자의 입장을 살펴보면 헤브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천여년에 걸쳐 이 곳에 살아왔던 아랍사람들의 입장에선 졸지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지역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헤브론의 아랍사람들은 다른 어느 곳보다 저항 정신이 투철하기로 유명하다. 아마도 그들은 헤브론이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묘가 있는 성지이기 때문에 이곳이 유대인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운동의 본산지라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헤브론은 자신의 조상들이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산 땅이며(창 23장) 그들 조상의 무덤이 있는 성지이기 때문에 이곳에 아랍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단히 탐탁치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극단적인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헤브론에서는 큰 사건들이 벌어지곤 하였다. 그 중 1994년 2월 25일 바루치 골드스타인이라는 유대 극우주의자가 새벽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아랍사람들에게 무차별 기관총을 난사해 29명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한 사건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이렇듯 불안한 공존을 하고 있는 헤브론의 현실이 오늘날 해결하기 힘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