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28. 희망

2016.09.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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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저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21세기가 한참지났지만 우리 주변에는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경제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엥겔지수는 자꾸 높아만 가고 피부에 와 닿는 물가 상승률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지독한 절망의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 구약성서의 일관된 외침이다.,

 

본문의 상황은 남유다의 왕 아하스 시절 북이스라엘왕 베가와 아람왕 르신이 반 앗시리아 연합을 결성을 거부하는 유다를 쳐들어와 나라가 큰 위기에 빠졌던 정황이다. 당시 유다왕 아하스는 두 나라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하여 앗시리아에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 때 이사야 선지자는 강대국 앗시리아를 의지하려는 왕의 잘못을 책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것을 강권하면서 유명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예언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할 경우 사람이 바라볼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분명 가능해질 수 있음을 확신하며 늑대와 어린양이 어울리고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는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고난이 많았던 민족이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라의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위기의 역사에 대응하여 마침내 나라를 회복하고 오늘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의 국가(國家)인 ‘hatikva(희망)’에는 절망에 굴하지 않는 그들의 희망이 잘 나타나 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유대의 영혼이 노래하는 한, 시온이 있는 동쪽으로 눈을 향하고 있는 한,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2,000년을 품어온 우리의 희망 그것은 우리의 땅 시온의 나라와 예루살렘 안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것.”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본다.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면, 나라의 회복이라는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2,000년을 기다려온 유대인과 같이 시간을 가지고 불가능한 일들을 조용히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변화될 우리 사회의 희망을 조용히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