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30.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

2016.09.1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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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46:1-2 “벨은 엎드려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갔느니라.”

 

우리나라는 일본 강점기라는 암흑의 역사가 있었다. 36년여의 강점기에서 해방된 후 오늘까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일제의 잔재와 그들에게 협력했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구약성서에서도 그들을 괴롭혔던 강대국과 그들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있어 왔는데 본문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본문은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을 때(587-539 B.C.)로, 유다백성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포로로 끌고 온 바벨론의 신은 두려움 그 자체였던 시기다. 선지자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바벨론의 신을 조롱하며 강대국과 그 종교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당시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던 나보니두스가 바벨론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바벨론 출신이 아닌 하란 출신의 장군으로 반란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역사가들이 한 마디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 평할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많이 했다. 그는 바벨론의 신이었던 마르둑보다는 하란의 신이었던 ‘달신’을 더 섬겨 마르둑 제사장들의 분노를 샀고, 수도보다는 지방 휴양도시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많아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있었다.

이 때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바벨론에 침공해 오자 나보니두스는 서둘러 수도 바벨론으로 돌아와 민심 수습책의 일환으로 주변 도시의 신들을 수도 바벨론으로 가져왔고, 자신의 부재로 중단되었던 신년축제를 다시 열며 제국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선지자는 이사야 46:1~2절을 통하여 나보니두스가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이미 바벨론 제국의 국운을 기울어져 곧 멸망할 것이며, 그들이 전에 유다를 포로로 잡아갔듯이 바벨론 신들도 짐승에 실려 포로로 잡혀가는 운명이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신인 벨과 느보는 모두 바벨론의 주신이다. 벨은 본래 하늘의 신으로 모든 신들의 아버지였고, 그 중심지는 니푸르로 나중에 마르둑신에 동화된 신이었다. 보르시파의 신인 느보는 마르둑의 아들로 숭배되던 신이었다. 이들은 모두 바벨론 신년 축제 때 신들의 행렬에 참여하는 중요한 신이었다. 포로민들이 바라보기에 장엄하고 두려운 신들의 행진을 선지자는 희화화하여 바벨론의 신들이 엎어지고 구부러지면서 포로로 끌려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우상에 대한 조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포로민들이 당신 바벨론에 순응이 아닌 저항을 통해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려는 시도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직도 강대국 찬양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일부교회의 목소리와 같이 굴종에 익숙한 한국인과 한국교회에게 성서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노력이 예언자다운 삶이라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