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37. 학개와 성전건축

2016.09.1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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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1:4-5 “이 전이 황무지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 찌니라.”

 

학개서는 2장밖에 안 되는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었지만 교회에서 비교적 자주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경 중 하나다. 학개를 인용하고 있는 교회의 목적은 대개 하나다. 교회에서 성전을 건축할 필요가 있을 경우 학개가 그랬듯이 성전 건축을 독려하려는 목표를 공유하며 학개를 인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은 성전 건축이라는 대의명분 아래에서 겉으로 보이는 예배당 건축에만 혈안이 되어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일부 교회에 실망하여 그들이 인용하는 학개서의 말씀도 외면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 일부 교회에서 인용하고 있는 학개의 말씀이 정당한 인용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같은 상황이 아닌 잘못된 인용이라는 것이다.

선지자 학개의 상황은 반드시 유다가 페르시아의 지배밑에 있었던 정황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학개 당시 유다민족은 강대국 바벨론에게 50여 년(587-539 B.C)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자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고국으로 다시 돌아와 페르시아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나라가 멸망하고 폐허만 남아 절망하고 있는 귀환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었고, 강대국 페르시아에 동화하려는 사람들에게 유다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들에게 희망과 정체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종교공동체의 재건 외에는 없었으며, 그중 특히 눈에 보이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존재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개 선지자에게 종교공동체의 구심점으로서 성전 건축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학개가 말하는 성전 건축은 단순한 예배 처소의 건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유다의 재탄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며, 무너져가는 그들의 사회와 종교회복의 의미로서 성전 건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개가 성전 건축을 강조한 의도는 성전 건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재정립과 종교회복을 이루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일부 교회의 성전 건축 문제는 무엇인가? 그들의 목적이 학개와 같은 목적에서 성전 건축을 한 것이라면 우리는 박수를 치며 독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개를 인용하고 있는 그들의 성전 건축 자체가 목회자의 업적 치장이나 자기과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종교공동체가 와해되어 종교 회복이 아닌 종교 분열의 길로 들어서게 되며, 그 구성원들의 상처는 회복 불가능의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주변에 우뚝 서 있는 대형 예배당을 바라보며 종교공동체 회복의 상징물보다는 인간 교만의 상징인 바벨탑을 연상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간 잘못된 목적에서 실시해 온 눈에 보이는 예배당 건축보다는 학개와 같이 우리 주변의 무너진 종교공동체의 회복에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