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4. 어떤 상황인가?

2016.09.1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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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    
                      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곳 십일조와 헌물이라.”    
     구약성서에 나타난 모든 예언자의 글을 읽을 때, 예언자가 살았던 특정시대의 배경아래서 바라본다면 아무리 긴 분량의 예언서라 할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그가 산 시대와 동떨어진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말라기 선지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말라기 선지자가 언제 활동했는지, 그가 무엇을 선포했는지에 대해서보다 그가 특별히 십일조를 강조한 예언자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말라기 인용은 개역성서의 강력한 말투를 빌려 십일조를 바치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3:8)’으로 표현하며 십일조를 바칠 것을 독려하는데 국한되고 있다. 그러면 말라기 선지자 선포의 핵심이 ‘십일조’일까? 물론 아니다. 말라기 선지자 선포의 핵심도 말라기가 살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연결시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주전 450년경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당시는 유다가 멸망한지 140여 년 정도 지난 상황으로 강대국 페르시아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었다. 유다가 멸망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당시인 바벨론 포로시기(주전 587-539년)에는 많은 유다사람들이 정치적 공동체 회복에 대해 강력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한 지 100년이 넘어가고 정치적 공동체의 회복이 요원하게 보이자 ‘유다’라는 그들의 정체성마저 흔들릴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유다의 지도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정치공동체의 희망을 과감히 버리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임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종교공동체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였다. 왜냐하면 종교공동체의 유지만이 그들이 강대국의 속박아래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당시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성경인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등은 모두 종교공동체 강조의 맥락에서 쓰여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페르시아시대에 활동한 말라기 선지자의 가장 큰 고민이자 선포의 핵심도 종교공동체의 유지였다. 당시 말라기 선지자가 바라본 유다공동체는 제사장에서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종교공동체의 유지와는 상관없는 종교적 타락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만일 국가라는 보호막이 없는 상황에서 종교공동체마저 무너진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공동체는 이전 앗시리아의 민족혼합정책으로 인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북쪽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아 그들도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눈먼 것, 저는 것을 예물로 바치는 제사장들의 죄를 책망하며 종교공동체 회복을 외쳤고, 일반 백성들을 향해선 십일조 문제를 거론하며 온전한 하나님종교 회복을 강조했던 것이다. 즉, 말라기 선지자는 무너지는 종교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온전한 십일조라는 수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라기 선지자의 모든 주변 상황을 생략한 채, 무너지는 교회 재정을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십일조를 강조하거나 세속적인 목적에서 말라기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작정 인용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