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6. 노아의 방주

2016.09.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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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8:3-5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       
                 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창세기 6장부터 나오는 홍수 사건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악한 세상에서 방주를 통해 의인 노아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는 말씀이다. 그런데 오랜 전부터 사람들은 성서에서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의 흔적을 찾으려 시도해 왔다.
     아라랏산은 터키의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고 높이 5,185m, 산의 둘레가 130Km인 매우 거칠고 험준한 지형을 자랑하는 산이다. 산 전체의 위쪽 1/3은 만년설로 덮여 있고, 산꼭대기 100m까지는 빙벽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의 고원지대에 비해 유난히 우뚝솟아 있어서 맑은 날씨에는 160Km 밖에서도 정상이 보일 정도다. 또한 주변에는 아르메니안,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현재는 휴화산으로서 제일 최근의 화산 폭발은 160년전인 1840년 6월 2일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아라랏산과 같은 신비의 산에 노아의 방주가 반드시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주전 3세기 바벨론 출신의 제사장인 벨로수스나 주후 1세기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노아의 방주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 현재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중세의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는 아르메니아 접경에 있는 아라랏산에 노아의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탐험가들은 아라랏산에서 발견한 나무, 그밖의 자재들을 노아 방주의 일부분으로 주장하고 있고 미국, 또는 러시아 비행사들이 찍은 항공사진을 근거로 아라랏산의 노아 방주의 존재를 최근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탐험가들의 발견과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지명인 아라랏산이 오늘의 지명 아라랏산과 일치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아라랏의 위치에 대해선 일치하지 않는 많은 논쟁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한 예로 터키 정부에서는, 창세기의 고대 아람어 및 시리아어 성경에는 방주가 선 곳을 Ture Kodu산이라고 기록했는데 이 지역은 현재 아라랏산보다 남쪽으로 400Km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반 호수 남동부 지역이며 이 산은 이슬람의 코란에서 노아의 방주가 멈춘 산으로 언급되는 Cudi산과 일치하므로 현재 아라랏산을 노아의 방주가 내린 곳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독교에서도 각 나라의 입장에 따라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장소에 대한 다양한 전승들이 존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해 그 역사성을 부정하는 기독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치와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 성배를 찾으려는 시도와 같이 성서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노아와 홍수 사건의 주제는 의인 노아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지 방주 자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