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15. 단지파 단군(?)

2016.09.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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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삿 18:1-2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
     라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
     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우리의 국경일 중 개천절이 있다. 개천절은 단군신화와 연결되어 기독교인과는 매우 미묘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단군신화가 옛날옛적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독교 일각에서는 성서에 등장하고 있는 단지파가 동쪽으로 와서 단군이 되었고 우리가 단지파의 후예라고 무리하게 연결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즉, 성서의 단지파는 초기 역사에 등장하다 후기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사라졌는데 사라진 단지파가 동방으로 왔고 우리 민족이 그 단지파의 후예라는 것이다. 이들은 허구인 단군신화를 성서와 연결시켜 허구를 실체로 만들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잘못을 입증할 수 있는 성서에 등장하는 단지파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단지파의 시조인 단은 라헬의 종 빌하를 통해 낳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로 유다, 요셉 등 현저한 역할을 하였던 형제와는 달리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사람이다.
    이후 단지파는 지파 분배시 블레셋에 인접한 해안 평원지대를 분배받아 그 지역을 다스렸었는데 삼손과 같은 사사가 등장하였을 때는 블레셋과의 경쟁이 가능했지만 이후 월등히 앞선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던 블레셋에게 밀려 분배받은 땅을 빼앗기고 북쪽 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당시 북쪽 지역은 이스라엘 영토로 확정되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이 거하였던 많은 장소들이 있었는데 단지파 사람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라이스를 정복하고 ‘단’이라 고쳐 그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
    도시 ‘단’은 이후 이스라엘의 북쪽 한계지역을 가리키게 되었는데, 우리가 보통 우리의 영토를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부르듯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영토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부르며 단지파가 점령한 북쪽도시 ‘단’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단은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뒤 벧엘과 더불어 여로보암이 세웠던 우상숭배의 근거지인 금송아지 신전이 있었던 오욕의 장소가 되었고, 이후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당할 때 철저히 파괴되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단 지파는 다른 10개 지파와 마찬가지로 앗시리아의 민족 혼합정책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거나, 잔류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이주해온 이방인들과 결혼하여 혼혈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통성ㅇ르 잃어버리고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를 가리켜서 우리는 “잃어버린 10개지파의 전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려움속에서도 순수성을 유지한 ‘유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보듯이 사라진 것은 단지파만이 아닌, 신앙을 지키지 못한 북이스라엘의 10개지파이며, 서서히 혼혈이 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내려간 것이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은 분명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단지파가 동방으로 와서 우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주장은 ‘단’이라는 이름이 우연히 같다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