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25. 므낫세왕과 아시리아 제국

2016.09.1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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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21:1-3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므낫세왕(697-642 B.C)은 유다왕조를 반세기 이상 다스렸던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역사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성서에서는 열왕기하 안에 세 부분(왕하 21:1-18; 23:26-27; 24:3-4), 역대기 역사에 한 부분(대하 33:1-20), 예언서에 한 부분(렘 15:4)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므낫세의 행적에 대해 남아 있는 고대 근동의 자료는 주변 강대국인 아시리아의 자료인데 여기서 므낫세는 아시리아 왕을 섬기고 있는 봉신 중 한 사람으로만 묘사되고 있다.

산헤립(704~681 B.C)-엘살하돈(680-6669 B.C)-앗수르바니팔(668-627 B.C)로 이어지는 므낫세 당시 아시리아의 왕들은 여러 주변 나라들을 평정하고 명실상부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특히 엘살하돈 시대에는 아시리아지역의 서부지역을 교란해 모든 반란을 실질적으로 선동해 온 이집트를 정벌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며 마침내 주전 671년에는 멤피스를 점령하여 이집트를 아시리아의 수하에 두게 된다. 엘살하돈은 지중해 동쪽에서 아시리아의 패권을 확인하기 위해 키프로스, 페니키아, 두로와 시돈에 대한 정벌을 단행하였다. 거기서 그가 점령한 하티와 유프라테스강의 다른 편 왕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왕궁을 짓는데 필요한 물자들을 모으게 할 때 그 명단 중에 므낫세의 이름도 들어 있는데 엘살하돈의 프리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하티 지역과(유프라테스강) 건너편 지역의 왕들을 불렀다. (그들은) 두로왕 Ba’lu, 유다왕 므낫세, 에돔왕 Qaushgabri, 모압왕 Musuri, 가사왕 Sil-bel... 아스돗 왕 Ahimilki-해변가의 12왕과...”

또한 엘살하돈의 후계자인 앗수르바니팔(668-627 B.C)의 행적을 기록한 앗수르 문서에서도 므낫세는 이집트로 원정을 떠나는 새 아시리아의 왕을 영접하기 위해 나온 서쪽 해안의 봉신 목록에서 나오고 있다. “내가 이집트를 향하여 행진하고 있는 동안 해안과 섬들과 본토로부터 22왕들이 나왔다. 두로왕 바알, 유다왕 므낫세, 에돔왕 콰스가브리...” 이러한 므낫세 시절의 여러 정황상 유다는 이미 앗수르 제국에 복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므낫세가 취할 수 있었던 최상의 정책은 앗시리아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충실한 속국으로 남아 있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국제정세와는 상관없이 아시리아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여 유다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던 므낫세를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서는 므낫세의 행적을 주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대제국에 저항하지 않았던 므낫세를 비난하며 하나님께서 처음 명령하신 명령을 언제나 엄격히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