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기억의 일부가

2018.10.02 12:47

두둥둥 조회 수:44

aHsIwQy.jpg

 

마지막 봄날에

 

신도시에 서있는

건물 유리창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쓸쓸한 마당 한 귀퉁이에 툭 떨어지면

윗채가 뜯긴 자리에

무성한 푸성귀처럼 어둠이 자라나고

등뒤에서는 해가 지는지

 

지붕 위에 혼자 남아있던

검은 얼굴의 폐타이어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을

공연히 헛 돌리고

타워 크레인에 걸려있던 햇살이

누구의 집이었던

 

넓혀진 길의 폭만큼

삶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포크레인은 무르익기 시작한 봄을

몇 시간만에 잘게 부수어 버렸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 날짜가 적힌

금간 담벼락으로 메마른

슬픔이 타고 오르면

기억의 일부가 빠져

나가버린 이 골목에는

먼지 앉은 저녁

햇살이 낮게 지나간다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있는

오래된 우물만 스스로

제 수위를 줄여 나갔다

 

지붕은 두터운 먼지를 눌러 쓰고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낯익은 집들이 서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길이 뚫리고, 누군가 가꾸어 둔

열무밭의 어린 풋것들만

까치발을 들고 봄볕을 쬐고 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05 다음 가을이 주는 두둥둥 2018.06.18 37
704 어느 하루를 위해 두둥둥 2018.05.16 36
703 계절이 닿는 두둥둥 2018.09.28 36
702 어설픈 표정으로 두둥둥 2019.02.13 36
701 시로 끄적이다 두둥둥 2019.02.13 36
700 깨지 않아도 좋을 두둥둥 2019.02.12 36
699 네가 살아가기엔 두둥둥 2018.11.20 36
698 내리는 빗 소리 두둥둥 2018.06.22 36
697 외로운 별의 노래 두둥둥 2018.04.27 36
696 무지개를 사랑한 걸 두둥둥 2018.09.10 35
695 영혼도 혼자인 것 두둥둥 2018.09.20 35
694 운명을 바꾼 사과 두둥둥 2019.01.07 35
693 행복이라 두둥둥 2019.02.13 35
692 한 뼘도 주기 싫어 두둥둥 2019.02.12 35
691 누군가 내게 사랑은 두둥둥 2018.10.18 35
690 달빛에 젖어울다 두둥둥 2018.08.23 35
689 별이라고 그럽디다 두둥둥 2018.05.04 35
688 그냥 내 곁에서 두둥둥 2018.05.09 35
687 목화밭을 사랑한다 두둥둥 2018.09.07 34
686 구름 모이는 날 두둥둥 2018.09.09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