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73. 임마누엘

2016.12.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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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예언자의 오래된 이 말씀이 단지 성탄의 기적만을 언급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와 같이 계신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또 천상적인 사랑이 이 땅에 내려온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은 성탄의 복음을 통해 오직 상징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잘 알려진 사실과 보편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세상 안에 계신다는 사실은 무슨 뜻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세상 안에’계신다는 사실은 무슨 뜻입니까? 현실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현실은 하나님이 세상과 동떨어져 계시고, 세상이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화해를 진리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신앙고백은 오직 계시에만 근거해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오직 믿음 안에서만 행해질 수 있으며, 오직 믿음 안에서만 수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고백은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바로 이런 고백입니다.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오직 계시에만 근거해 있습니다. 만약 신앙고백이 영원한 사랑을 사건이라고 일컫는다면, 신앙고백은 오직 믿음 안에서만 일어나며, 오직 믿음만을 요구하고, 기대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에 관한 이 소식은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된 내용과도 다른 것입니다. 주님의 천사는 교수가 아니었습니다. 교수라면 아마도 “사람들에게 구주가 나셨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실로 그가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매우 보편적인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속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들일 거야.”라고 말입니다. 마치 영화관이나 극장에서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하는 말과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천사는 목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를 가리킵니다. 그의 말은 우리를 향해 주어진 말입니다. 너희에게 오늘 구주가 나셨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닌지를 질문하지 않고, 다만 “너희에게”라고만 말합니다. ‘바로 여러분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이 일은 바로 여러분을 위해 일어난 일입니다! 보십시오. 성탄절 사건은 우리와 무관하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사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 소식은 우리도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묻는 편지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편지를 받아서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편지를 혼자서 읽고 싶어합니다. 편지는 매우 개인적인 사안입니다. 하지만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사건은 결코 개인적인 사안이 아닙니다. 오늘 너희에게 구주가 태어나셨다. 주님의 천사는 여러분과 나를 가리키며, “너희에게!”라고 말합니다 그의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소식입니다.